본문 바로가기

자각각타(自覺覺他)

게이른 비구와 촌장의 어머니

마음을 다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빠르고 가볍게 움직여서

어느 곳이든 좋아하는 곳에 머문다.

마음을 다스리면 참으로 유익하다.

잘 다스려진 마음은 행복을 가져온다.


-법구경- 


게이른 비구와 촌장의 어머니


한 무리의 비구들이 산기슭에 들어앉은 마띠까라는 마을에 이르렀다. 비구들은 마을에 들어와 탁발을 했다. 그 마을 촌장의 어머니인 마따까마따는 비구들에게 탁발 공양을 하며 물었다.


 "사문들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수행하기에 적당한 곳이지요 곧 우안거가 시작되거든요."


마띠까마따는 비구들이 마띠까 마을에서 석 달 동안의 안거를 나게 되면 자기 마을에 큰 공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문들께서 우리 마을에서 수행을 하시면, 저는 그동안 오계를 받아지키고 저의 일을 잘 지키면서 수행하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생필품과 음식을 보시하겠습니다. 부디 저희 마을에서 수행해 주십시오."

비구들은 그 제안을 침묵으로써 받아들였다.


 비구들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마띠까마따는 마을 가까이에 사원 터를 마련하고 비구들의 숫자만큼 초막을 지어 주었다. 그곳은 마을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마을의 소란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멀었으며, 비구들이 마을에 탁발을 나오거나 재가신자들이 방문하기에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가까웠다. 

 마띠까마따의 열성적인 후원에 감동한 비구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행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각자 자기 초막에서 열심히 수행하고, 둘 이상이 모여 앉아 얘기하지 맙시다. 만약 급한 상황이 생기면 말을 아끼고 사원의 종을 울려 알리기로 합시다. 하루에 한 번 마을로 탁발을 나가는 시간에만 모여서 가되 언제나 말을 아낍시다. 그리고 저녁때는 한자리에 모여 장로 비구에게 설법을 듣거나 수행에 대한 점검을 받고, 아침에는 일찍이 탁발을 나갑시다. 부디 늘 집중을 놓치지 말고 깨어 있읍시다."


 어느 날, 마띠까마따는 자기 가족과 이웃의 재가도친을 데리고 사원에 음식을 공양하러 갔다. 그런데 스님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알아보니, 스님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탁발 시간이 되거나 종을 치기 전에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띠까마따는 하는 수 없이 종을 쳤다.

비구들은 무슨 큰일이 났나 보다 하고 제각기 자기 방에서 나왔다. 마띠까마따는 비구들이 저마다 입을 다물고 나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스님들, 혹시 서로 다투시기라도 한 건가요?"

 "아니오.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런데 왜 저마다 자기 초막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나와서도 입을 다물고 있는지요?"

 "우리는 각자 자기 방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말을 하는 것은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자제하는 것뿐입니다."


 마띠까마따는 비구들이 한다는 수행에 대해 궁금증이 일어나서 물었다.


 "그 수행이란 것이 무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세존께서는 사람에 따라 다른 수행법(명상 주제)을 가르쳐 주시는데, 저희에게 주신 수행법은 우리 몸의 32가지 구성 요소를 면밀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코 깨끗하지 않으며 파괴되고 소멸되는 이 몸의 속성을 분명히 알아서 이 몸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침내는 궁극적 깨달음에까지 나아가는 것이지요."

 "그 서른두 가지 구성 요소란 어떤 것인가요?"

 

비구들은 머리털,몸털, 손발톱, 이빨, 등등 32가지의 구성 요소를 들려주었다.

 " 그 수행은 스님들만 하실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건가요?"

 "출가자든 재가자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지요."

 "그럼, 저에게도 그 수행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비구들은 그녀에게 수행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마띠까마따는 비구들의 가르침에 따라 곧 수행을 시작하였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 결과 몸에 대한 집착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비구들보다 먼저 세 번째 깨달음의 경지인 아나함에 이르렀다. 또한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수행했기 때문에, 덤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뚤어 알 수 있는 신통력도 얻었다.


마띠까마따는 그 신통력으로, 비구들이 아직 네 가지 깨달음의 경지 중에서 어떤 것도 성취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비구들 모두 최고의 경지인 아라한에 이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 의아했다. 그래서 혹시 수행장소가 접합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함께 수행하는 비구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비구들의 음식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았다. 수행에 필요한 충분하고 적당한 음식, 그것이 문제였다. 


그로부터 마띠까마따는 비구들에게 맞는 음식이 무엇인가를 잘 살폈다. 그리고 비구들에게 맞는 여러 가지 음식을 성성스럽게 마련하여 충분히 공양하였다. 그러자 비구들은 곧 몸과 마음의 안정을 얻고, 바른 노력과 마음 집중으로 수행에 매진할 수 있었다.


안거가 끝나고 비구들은 붓다가 머무는 제따와나 사원으로 돌아왔다. 비구들은 그들 모두 마띠까 마을의 좋은 환경 속에서 건강하게 잘 지냈으며 음식에 대해서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고 붓다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비구들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 원하는것을 모두 준비하고 보시해 준 마띠까마따 덕분이라고 칭송했다.


한 비구가 곁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자신도 마띠까 마을로 수행을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붓다에게 허락을 받아 마띠까 마을로 갔다. 마띠까 마을에 도착해 보니, 그가 올 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모든 것이 갖추여져 있었다. 


그는 사원으로 가면서, 먼길에 피곤하니 미리 초막을 청소해 놓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원과 초막 안이 모두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사원에 도착한 뒤에 마실 물과 생필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자, 마띠까마따가 곧 심부름꾼을 보내 필요한 물품을 가지고 왔다. 죽과 버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것들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마띠까마따가 수행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음식을마련해 직접 와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띠까마따가 직접 음식을 가지고 왔다. 

비구는 공양을 마친 뒤에 마띠까마따에게 넌지시 물었다.

 "도친께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러나 마띠까마따는 비구의 질문에 대답하기가 곤란하여 약간 말을 돌렸다.

 "왜 그런 걸 물어십니까?"

 "도친께서는 제가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보시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묻는 것입니다."

 "사문이여, 저야 어떻든, 장로님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신통력을 갖지 않아도 미루어 헤아려서 그와 같은 일을 할수는 있겠지요."


 마띠까마따는 말을 돌려 자신이 가진 신통력에 대하여 언급하는것을 끝까지 피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그것만으로 그녀가 신통력을 갖고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비록 출가하였지만 여전히 속세적인 생각들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순수하지 못한 생각에 빠져 그것을 즐길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여자 도친은 내가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면 낭패가 아닌가? 차라리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하여, 그 비구는 곧 마띠까 마을을 떠나 제따와나 사원으로 돌아와 버렸다. 붓다는 수행을 하러 가겠다고 자청하여 떠난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 물었다. 

 "비구여, 왜 마띠까 마을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일찍 돌아왔느냐?"

 "세존이시여, 마띠까마따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제 마음속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순수하지 못한 생각을 꿰뚤어 보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참으로 네가 머물 곳이로구나. 비구여, 네가 할 일은 단지 한 가지만을 지켜보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놓아 버려라."

 "세존이시여,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쉽고 빠르게 움직이는 너의 마음이니라. 마띠까마따는 네가 거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도와주지 않았느냐? 다시 그곳으로 가거라.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마라. 오직 끊임없이 변화하는 너의 마음만을 주의 깊게 참을성 있게 지켜보아라."


그 비구는 결국 마따까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마띠까마따 전과 다름없이 사원을 깨끗하게 살펴 주고, 적당하고 좋은 음식을 제공하였다. 비구는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을 지켜보는 데만 주의를 기울일 수있었다. 그러고 머지않아 네 번째 깨달음의 경지인 아라한이 되었다.



*

'네 가지 깨달음'이란 즉,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을 가리킨다. 

첫 번째 수다원 :

'나'라고 하는 불변하는 '자아' 또는 '영혼'이 있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고, 중도.연기.사성제.팔정도 등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며, 의례나 의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거나 괴로움의 소멸에 이를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감각적인 욕망과 분노(미움, 혐오, 악의), 무지로 인한 괴로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한다.


두 번째 사다함 : 

거친 감각적 욕망과 분노에서 벗어난다. 모욕을 당하거나 탐탁지 않은 일에 대해 화가 날 수는 있지만, 매우 미세한 것으로서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정도게 그칠 수도 있다는고 한다. 


세 번째 아나함 : 

미세한 감각적 욕망과 분노까지 사라져서 자유로워진다. 더 이상 맛있는 것,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으며 미움이나 증오 때문에 괴로워할 일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불안, 자만, 무지 등은 남아 있어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와 괴로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아라한이 되어야 한다.


아라한 : 

글자 그대로 '공양받을 만한 이'라는 뜻이다. '모든 적을 무찔렀다'는 의미도 갖는다. 여기서 '적'이란 갈애와 번뇌를 의미한다. 모든 괴로움을 소멸하고 완전한 평화와 행복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출처 : 진리의 꽃 다발 법구경

'자각각타(自覺覺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혜로운 사람은 머리도 물이 흐르는 것처럼 유동적이다  (0) 2015.01.13
인자(仁者)의 태도  (0) 2015.01.09
법정스님 법어  (0) 2015.01.06
함께하면 좋은 사람  (0) 2014.12.26
효도하는 길  (0) 2014.12.23